





◈ 구성 / 연출

“창조적인 사람이 되는 데는 아주 작은 변화로도 가능하다.
모닝 페이지 쓰기와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당신의 내면의 소리를 이끌어내는 그 둘은 잠재된 창조적 재능을 발견하는 데
꼭 필요한 기본 도구이다.”
: 모닝 페이지
창조성을 일깨우려면 먼저 자신 안에 내재된 창조성을 찾아내야 한다. 창조성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모닝 페이지’를 활용하기 바란다. 여러분은 앞으로
몇 주 동안(훨씬 더 오랫동안 하기를 바라지만) 날마다 모닝 페이지를 할 것이다.
나는 모닝 페이지를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계속 해오고 있다. 내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모닝 페이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만큼 오랫동안 계속 해오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작가 겸 프로듀서인 지니는 모닝 페이지 덕분에 특별 프로그램을 멋지게 끝낼 수
있었다고 한다. “ 이제 전 거의 미신처럼 모닝 페이지에 집착해요. 지난번엔 특별
프로를 편집했을 때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모닝 페이지를 끝내려고 새벽 5시에
일어나곤 했죠.”
그렇다면 모닝 페이지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매일 아침 의식의 흐름을 3쪽 정도
적어가는 것이다. “어휴, 또 아침이 시작되었군, 정말 쓸 말이 없다. 참 커튼을
빨아야지. 그건 그렇고 어제 세탁물은 찾아왔나? 어쩌고저쩌고…….” 모닝 페이지는
저급하게 말하면 두뇌의 배수로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것이 모닝 페이지가 하는
커다란 역할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잘못 쓴 모닝 페이지란 없다. 매일 아침 쓰는 이 두서 없는 이야기가 세상에 내놓을
작품이 아니다. 일기나 작문도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 가운데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은 점이다. 글을 쓰는 것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페이지라는 말은 생각나는 대로 페이지에서 페이지로 써 내려가며 움직이는 손동작을
뜻하는 단어일 뿐이다. 모닝 페이지에는 어떤 내용이라도, 아주 사소하거나 바보 같고
엉뚱한 내용이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모닝 페이지는 멋있게 쓰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멋있게 쓰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글을 쓰는 당신 말고는 누구도 내용을 모른다. 당신 외엔 아무도 당신의 모닝 페이지를
읽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당신도 처음 8주 동안에는 자신이 쓴 모닝 페이지를 읽으면
안 된다. 3쪽 가량의 모닝 페이지를 쓴 다음 봉투에 넣어 봉해둔다. 아니면 3쪽을
스프링 노트에 적고 절대 앞장을 넘겨다보지 않는다. 단지 3쪽을 쓰기만 하고, 다음날
또 3쪽을 쓴다.
9월 30일. 주말에 도미니카의 생물학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 그녀와 난 리우
그란데 강과 포트 크릭으로 곤충 채집을 하러 갔다. 우리는 워터 크롤리와 나비를
채집했다. 나는 빨간 잠자리채를 만들었는데, 잠자리들이 기가 막히게 도망쳐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꽤 쓸모 있었다. 집 근처의 비포장도로를 기어가고 있는 독거미를
보았으나 잡지 못했다. 그것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모닝 페이지는 밝은 내용일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내용일 수도 있고, 내용이 조각조각
끊어지기도 하며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한다. 똑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할 때도 있고,
과장된 내용일 수도 있으며, 유치하기도 하고 과격하거나 침착한 내용인 경우도 있다.
심지어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지는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괜찮다.
어떤 것이든 그냥 매일 아침 3쪽을 쓰는 게 중요하다.
10월 2일. 아침에 일어나는데 머리가 아팠다. 아스피린을 먹으니 약간 어지러웠지만
좀 나은 것 같다.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겠다. 짐을 대충 다 정리했지만,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도라에게 받은 차주전자는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침에 써 내려간, 화가 나거나 우습거나 사소한 모든 내용들이 당신과 당신의 창조성
사이에 있다. 일에 대한 걱정, 빨랫감, 자동차의 엔진소리, 연인의 뜻 모를 눈빛 등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소용돌이치며 일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을 모두 모닝 페이지에 쓴다.
: 내면의 비판자
모닝 페이지는 창조성을 되살리는 첫 번째 도구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창조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지 못하며, 자신이 하고 있는
활동이 옳지 않다고 여기기도 한다. 이 것은 우리의 내면에 도사린 완벽주의자이자
심술궂은 비판자이기도 한 센서(잠재의식의 억압력)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센서는
우리의 좌뇌에 머물면서 끊임없이 파괴적인 발언을 해댄다.
센서는 쉼 없이 이렇게 말한다. “그걸 글이라고 쓰냐? 웃기네. 너는 구두점도 제대로
못 찍잖아. 지금까지 못 끝냈으면 절대로 끝내지 못할걸. 이런, 맞춤법도 틀렸잖아.
너는 대체 뭘 믿고 네가 창조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이제부터 센서의 이런 부정적인 의견은 진실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습관을 갖자.
물론 그런 습관은 하루아침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므로 연습이 필요하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곧바로 글을 쓰다 보면 센서를 피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잘못 쓴 모닝 페이지란 없기에 센서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센서는
혼자서 비평하라고 내버려두고(그래도 센서는 계속 떠들어대겠지만) 계속 손을
움직여 글을 써 내려간다. 센서의 생각을 적는 것도 좋다.
센서는 당신의 약점을 공격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 될 수 있는 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센서는 당신을 삼켜버릴 기회만 엿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센서는 교활한 적이다. 당신이 영리해질수록 센서도 영리해진다. 당신이 멋진
시나리오를 한 편 썼다면 센서는 그것밖에 안 되느냐고 말할 것이다. 또 처음으로
스케치를 해보았다면 센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휴, 피카소가 한 수
가르쳐달라고 하겠네!”
당신의 창조성이 살고 있는 에덴동산을 기어 다니면서, 당신을 그 창조성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끔찍하게 슛슛 소리를 내고 있는 뱀, 그것이 센서라고 생각하라.
뱀이라는 단어에서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한다면, 센서의 이미지에 맞는 ‘조스’의
상어 같은 그림을 찾는 것도 좋다. 찾았으면 그 위에 X표를 하고, 지금 모닝 페이지를
쓰고 있는 곳이나 공책의 표지 안쪽에 그 그림을 붙인다. 이런 식으로 센서를
혐오스럽고 약아빠진 캐릭터로 표현하면 당신의 창조성을 짓누르던 센서의 힘은
약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어쨌든 센서는 결코 이성적인 목소리가 아니며 오히려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닝 페이지를 계속 쓰다 보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모닝 페이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모닝 페이지를 거르거나 줄이면 안 된다. 기분에 좌우되어도
안 된다. 센서가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쓸 기분이 되어야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닝 페이지를
쓰면 기분이라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배울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것이 쓸데없다고 느껴질 때 오히려 가장 창조적인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모닝 페이지는 심판을 멈추고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피곤하든, 심술이 났든,
마음이 산만해졌든, 스트레스를 받았든,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인가?
당신 내면에 있는 아티스트는 아직 어린아이이고 더 키워져야 한다. 모닝 페이지가 자신의
어린 아티스트를 키워줄 것이다. 그러니 매일 모닝 페이지를 쓰는 걸 잊지 말자.
무엇이든 생각나는 것을 3쪽에 걸쳐 쓴다. 쓸 것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 쓸 만한
말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라고 쓴다. 3쪽을 채울 때까지 이 말을 쓴다.
3쪽을 가득 채울 때까지 무슨 말이든 쓰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모닝 페이지를 써야 하냐고 물으면, 나는 다른 한쪽 면에 이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모닝 페이지는 자신이 갖고 있는 두려움과 부정적인 사고의 다른 면으로
우리를 이끈다. 센서의 간섭이 닿지 않는 곳으로 말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때는 분명히
자신의 것이었던 평온하고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센서는 논리적인 뇌의 운동이다. 논리적인 뇌는 선택을 하는 단정적인 뇌이다. 논리적인 뇌는
깔끔하고 직선적으로 생각한다. 논리적인 뇌는 세상을 기존의 범주 안에서만 이해한다.
예를 들면 논리적인 뇌에게 있어 ‘말(馬)’은 말을 이루고 있는 동물적인 요소를 조합한 것일 뿐이
다. ‘가을 숲’은 가을 숲이 만들어내는 일련의 색깔들로만 비쳐질 뿐이다. 논리적인 뇌는
가을 숲을 보고 ‘빨강, 오렌지, 노랑, 초록’이라고 쓴다.
논리적인 뇌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생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논리적인 뇌는 기존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은 무조건 틀렸거나 위험한 것으로 여긴다.
논리적인 뇌는 똑바로 줄지어 행진하는 꼬마 병정 같은 것들을 좋아한다. 논리적인 뇌는
우리가 신중해야 할 때 특히 귀 기울이게 된다. 또한 논리적인 뇌는 우리의 센서이고
제2, 제3, 제4의 생각이다. 처음 쓴 원고를 보고 논리적인 뇌는 “도대체 이게 뭐야?
틀렸어!”라고 말한다.
반면에 창조적인 뇌는 발명가이고 어린아이이며 괴짜 교수이다. 창조적인 뇌는 “우와! 정말
멋진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상한 것들을 이리저리 꿰어 맞춰보기도 한다.
창조적인 뇌는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고 전체적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문장과 음영을 본다.
이를테면 가을 숲을 보고 “ 와! 나뭇잎 부케로군! 정말 예쁘다! 금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는
왕의 카펫이네”라고 생각한다. 창조적인 뇌는 연상을 잘하며 자유분방하다. 스칸디나비아
신화에서 배를 ‘파도 타는 말(wave-horse)’이라 불렀던 것처럼, 그 의미를 연상할 수 있는
여러 이미지들을 짝지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스카이워커(하늘을 걷는 사람)’란 주인공의 이름은 정말 재치 넘치는 창조적인 뇌의 작품이다.
왜 이런 논리적인 뇌와 창조적인 뇌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바로 모닝 페이지가 논리적인
뇌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게 하고 창조적인 외는 마음껏 뛰어 놀게 하기 때문이다.
센서는 생존을 담당하는 뇌의 한 부분이다. 그것은 숲을 떠나서 초원으로 나가는 것이 과연
안전한 일인지 결정하는 일을 맡고 있다. 센서는 창조성의 초원에 어떤 위험한 동물이 있는지
살펴본다. 센서에게는 창조성이 풍부한 생각이 상당히 위험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센서가 좋아하는 문장이나 그림, 조각, 사진들은 틀림없이 예전에 많이 보았던 것들일 것이다.
센서는 안전한 문장, 안전한 그림을 원한다. 모험적인 말이나 낙서, 아니 메모도 안 된다.
센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당신이 처음으로 시도한 일은 모두 틀렸거나 위험하거나 쓸데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신이 무언가를 털어놓을 때마다 누군가(당신의 센서)가 놀린다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그걸 이겨낼 수 있겠는가. 모닝 페이지는 더 이상 그런 비웃음에 귀 기울이지 않는 법을
가르쳐줄 것이다. 모닝 페이지를 씀으로써 당신의 부정적인 센서를 떼어버릴 수 있다.
(출처 : 아티스트 웨이 by 줄리아 카메론)







3D 애니 수업이 후반으로 접어들어 이제 본격적인 포폴 제작에 들어간다. 이런 저런
핑계로 과제가 많이 밀렸지만 선생님께서 대표성 띄는 몇 개의 과제정도로 그냥
넘어가 주셨다.
포폴용 캐릭터로는 일전에 꽤나 재밌게 플레이 했던 '페르시아 왕자'로 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모델링이 잘 되어있어 좀 더 잘 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생각
같아선 칼 뿐만이 아니라 화려한 창술을 해봤으면 하는 생각도 있긴 한데 이쪽 3D 쪽
으로 넘어오며 느끼는게 이래저래 참 많이 부족한 자질을 갖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무리 지은 과제들을 보아도 머릿속에 구현해본 애니와는 참 많은 차이가 있는
편이라 지금의 생각처럼 잘 될지는 모르겠다. 정말로..
아래는 버라이어티한 동작으로 어설픈 부분을 최대 은폐한 과제임.
단순한 동작은 어설픈게 바로 티가 나니까...ㅡ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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